독일의 주간 소식

         독일정보연구소

                 

 2000년 3월 21일                                           

자발적 참여

 돈이 세상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지금, 매일 주가의 상승 곡선을 바라보며 열광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독일의 한 편에는, 새로운 공동체 의식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고 있다. 정직함과 인간의 공동의식은 소멸하지 않는다는 시사 주간지 디 차이트의 표제 기사를 소개한다. 

 

정당 자금을 은익하는 정치가들, 기업을 떠나면서 대가로 수 천만 마르크를 요구하는 기업의 사장 등, 정치와 경제는 매일 부도덕을 한탄하게 할 동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 정직함, 강직함, 겸손함, 인간 사이의 정은 마치 소멸해 가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모든 시대가 다 한탄을 해 왔으며, 그럼에도 이러한 덕성들은 또 늘 새롭게 생겨나곤 했다. 도덕적 실체는 소모될 뿐만 아니라, 언제든 다시 창조되는 자원이기도 하다.

이런 것은 시민들이 복지국가의 과제를 떠맡는 것에서 볼 수 있다. 독일에는 거의 5만개의 “스스로 돕기모임”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돕고 있다. 시민들은 간병협회를 만들고, 노인들을 위해 스스로 돕기모임의 망을 형성하며, 임종을 지키기 위해 조직을 짜고, 교환주식(시민들이 각자의 능력이나 서비스를 조직적으로 교환하는 것)이나 구호식사를 제공한다. 복지 국가가 과중한 부담에 허덕이기 시작하면서, 공동체 의식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BAT와 쉘의 청소년 전문가들은 상호성의 문화가 형성되고 있음을 관찰하고 있다. 대학생들과 접촉이 많은 사람은, 환영할 일을 발견하게 되는데, 재능과 실력이 있는 학생들이 다시 자신의 능력을 인베스트먼트뱅킹이 아니라, 사회적 계획의 협력에 투자할 것인지 고려하고 있음을 경험하는 것이다.

자발적 도우미가 늘어나고 있으며, 이것은 특히 작은 그룹들에서 볼 수 있다. 교회나 복지단체들과 협력하려는 의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자발적 도우미들은 대형 조직들에는 거리를 둔다. 돕는 사람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 사이의 엄격한 구분은 사라지고 서로 돕기 가 이루어지고 있다. 도움을 주는 사람들은 단지 다른 사람을 도우려는 것 뿐 아니라, 자신이 어떤 서비스를 한 것으로 생각하며, 그것으로부터 소속감을 느끼려고 한다. 이런 상호성 속에서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생기며, 상대방을 통해 사회적 수업을 받게 된다. 도덕적 부가가치인 셈이다.

이러한 새로운 사회공동체에 개인은 태어나면서 소속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선택한다. 만약 주동자들이 비판과 개혁을 수용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 드러나면, 곧 회원들이 줄게 되고, 주동자의 합법성이 흔들리게 된다. 구속성과 관용이 중요하며, 평등과 공평성이 요구된다.

물론 이것은 아직 어린 식물이다. 그러나 돈에 대한 욕심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요즈음, 믿기 어렵지만 이것은 심지어 민간 기업들 속에서도 자라고 있다. 기업들은 기업이 종업원들에게는 단지 목적동맹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 그리고 많은 고객들도 한 기업의 경영이 주가의 상승과 가치의 창조를 혼동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늘 기업의 생태·사회결산표가 발표된다. 정직한 발표도 있고, 물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그러나 기업들은 이런 노력을 이유 없이 하지는 않는다. 회사들 중에는 시민사회와 직접 연결을 시도하기도 한다. 독일 청소년재단의 프로젝트 같은 것들에 대한 경제분야의 후원이 증가하고 있다. 후원금과 전문지식을 제공하고 그러한 프로젝트에 종업원을 참여시키고 있다. 이것은 물론 “덕성은 에너지가 된 이성이다”란 프리드리히 슐레겔의 말처럼, 기업의 이성적인 이익추구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이 새로운 인간공동의식은 아직 축제를 벌릴 이유는 되지는 않지만, 이것을 실천할 이유는 충분히 있다. 더욱 국가의 입장에서는, 이미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사회복지부가 재교육 장려정책을 통해 이미 하고 있듯이, 시민의 참여를 저지하는 대신 장려를 해야한다. 유엔은 2001년을 “자발인의 해”로 설정하려 하고 있다. 독일 연방은 이 기획에 참여할 것인가?

사람이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몰락과 갱신을 동시에 체험한다. 소위 모범이 된다는 사람들의 부패와 위선, 시민들에 대한 무리한 요구. 토크쇼에서 영혼의 벌거벗기, 텔레비전 토론의 저질스러움 등등. 시청자들은 그럼 것들을 원하는 것도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상호존중의 문화가 자리를 잡고 있다. 이것은 사회적인 것들의 섬세한 그물 속에서, 예를 들어 노숙자를 위한 시민들의 프로젝트나, 발칸과 아프리카의 비참한 지역을 위한 청소년들이 참여 속에서 이루어진다. 도덕의 망각을 한탄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현실에 눈길을 주고 있는가?

많은 청소년들이 자신의 삶의 축으로 가족을 새로이 발견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그러나 이것을 보수적 경향으로의 전환으로 파악하는 것은 너무나 단순한 생각이다. 가족 자체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과 혁신이 함께 있다. 삶의 방법이 모색되고 실험된다. 어째서 우리의 경각자들은 가족을 도덕적 갱신의 장소로 보지 않는가?

오늘날 “가족”이란 말은 부모-자식-공동체로만 이해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택공동체로서 이해해야 한다. 그러니까 작은 주거 공동체 같은 것이라고 부를 수 있다. 각자는 자신의 주거 공간이 있으며, 자신의 방법에 따라 다른 사람을 돕는다. 누구는 어린이를 돌봐주고 숙제를 봐주며, 누구는 정원손질과 집수리를, 또 다른 누군가는 장보기와 자동차 수리를 맡는다. 여기에서도 노인과 어린이, 상이한 사람들끼리의 만남이란 다양성이 존재한다.

이런 스타일이 시민사회에 이 시대의 고유한 시대적 특성을 부여한다. 이것은 비정부단체(NGO) 속의 성격과 비슷하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이런 대안적 운동은 전체적 조망이 가능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미 무수한 다양성이 존재한다. 전세계적 활동을 하는 제삼세계-연합은, 아시아와 남아메리카의 생산조건을 개선하려고 노력하며, 부패와 투쟁을 하는 사람들은 전세계적으로 동맹을 맺고 있다. 환경단체들은 생태를 위한 기획들을 유엔보다 더 많이 제안한다. 정보사회에서는 공동안녕의 지향이 한 국가나 한 기관 속에서가 아니라, 초국가적으로 그리고 연합해서 전산망 속에 나타난다.

그물, 자주 사용되는 이 메타퍼는 전통적인 수직구조의 결별과, 정말로 중요한 것이 일어나는 유일한 곳은 국가나 기업이라는 생각의 결별을 표현하고 있다. 오늘날은 유동적이며 한 눈에 파악하기 어려운 구조들이 형성되며, 이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다시 새롭게 그들의 규범을 찾아낸다.

예를 들어 80년대의 인터넷 개척자들은 한 묶음의 덕성을 정의해 냈다. 그들의 커뮤니케이션은 우선 어떤 규칙에도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목록은, 자주 상업성과 포르노 그리고 비방으로 오용되기는 하지만, 오늘날 수천만의 네트 참여자들이 배우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자발성, 상호성, 공개성이란 그들의 규범은 의미를 갖는다. 가상공간 공동체에의 참여는 서로 도움이 되는 한 자유롭게 열려 있다. 참여자들이 사회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한, 아무도 권력을 행사할 수 없다. 사실적 비판을 부정하거나 다른 사람의 의견을 억압하면 비난을 받게 된다. 그리고 참여자가 단지 소비만 할 뿐, 아무 것도 기여하지 않으면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된다.

이것은 지하문화적 예절로 형성이 되었지만, 공동체적 행동의 이해로 점차 펴져 나가고 있다. 세계은행이 주관하여 전산망으로 진행된, 신뢰의 구축에 관한 토론에서는 전세계로부터  경험이 교환되었고, 이것을 통해 다시 타민족에 대한 개방이란 덕성을 연습하게 된 것이다.

무엇이 한 사회를 유지하게 하는가? 누군가가 이 질문을 중요하게 느낀다면, 그는 이제 찾으러 나가야 할 것이다. 산업사회에서의 공동체 의식은 정당, 교회, 노동조합과 복지단체처럼 완결된 주조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들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오늘날 그 밖의 어떤 다른 것도 지각하지 못하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실망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지식이 분산되어 있는 사회에서는, 공동체의식에는 점차 다른 형태가 첨가되며, 그 속에서 시민들은 새로운 경험을 하게된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해 내려오는 제도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을 수 없다. 시민들이 사회적 공간을 새로이 측량하는 곳에서 그들은 다른 사람들, 예를 들면 지역의 국회의원이 도대체 무엇에 기여하는지 물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하여 치유의 힘을 가진 개혁 압력이 형성될 수 있다.

 

                   독일의 주간소식은 매주 화요일에 새로와집니다.

                                  webmaster@ginfoc.de